Critic &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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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시사 조각들’에게 묻다Critic & Memory 2022. 11. 20. 06:07
김진호. 프리랜서작가. 민중신학자 ‘시사’(シーサー, Shisa)는 오키나와의 대표적 상징물로,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액막이 신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의미였던 것은 아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14~15세기) 시사의 표상들은 모두 류큐 왕국과 군주를 상징하고 있다. 즉 국가와 군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존재다. 그러니 당연히 백성들은 누구라도 시사 상을 자신의 집이나 영역에 세울 수 없었다. 오직 왕을 위한 존재인 것이다. 17세기, 에도 막부시대(江戸幕府時代)에 일본 본토 남부 끝단의 정치세력인 사쓰마 번(薩摩藩, 오늘의 가고시마 지역)의 침공을 받아 류큐 왕국은 항복을 선언하고 막대한 공납물을 바쳐야 했다. 왕국은 존속할 수 있었지만 일종의 봉신국이 된 나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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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주의 전시비평Critic & Memory 2022. 11. 20. 05:58
공간 1. 땅(地) 전시장 안쪽 가장 구석진 곳의 바닥에 마른 모과나무 열매 오십여 개가 놓여있다. 가지런히 놓인 모과 열매들은 크고 둥그런 원을 형성한다. 일정 시간 동안 행성의 움직임을 촬영한 이미지처럼 하나의 궤도를 그리는 원이다. 열매들 각각은 저마다 배정된 시구와 나란하게 앉아있다. 사각의 흰 종이에 적힌 것은 윤동주 시인의 이름과 의 구절들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은 시의 흐름을 따라 모과 열매의 궤도를 돌며 글을 읽는다. 마치 모과별의 궤도를 따라 도는 또 하나의 행성처럼, 그리운 이름들을 부르며 사랑하는 표상들 사이를 서성이는 시인처럼. 이 작품의 제목은 윤동주 시인의 시와 동일한 Counting the stars at night, 별헤는 밤이다. 작품 Counting the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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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살, 다시 부르는 노래Critic & Memory 2022. 11. 20. 05:47
김정혜 큐레이터 천정에 매달려 있는, 이미 생명이 사라진 검은 열매들을 따라 경사진 길을 내려가면 무심한 조명이 비치는 하얀 벽과 마주하게 된다. 자우녕의 《최선의 관계》전은 소실을 지나 소멸과 맞닥뜨리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관계’, 더구나 최선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 모든 관계가 끝나버린(것이 분명할),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길잡이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의 질문을 툭 던져 놓는다. 이어지는 공간에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포르투갈의 메세자나, 일본의 오키나와, 한국의 우도를 다니며 수집한 낯 선 호기심들이 그 만의 방식으로 재구성되어 놓여 있다. 그에게 수집은 목적도 의미도 아니다. 우연한 호기심과 가벼운 시선에서 요청된 행위들이다. 자우녕의 행위는 시작에 집중하고 과정을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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