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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주의 전시비평Critic & Memory 2022. 11. 20. 05:58
공간 1. 땅(地)
전시장 안쪽 가장 구석진 곳의 바닥에 마른 모과나무 열매 오십여 개가 놓여있다. 가지런히 놓인 모과 열매들은 크고 둥그런 원을 형성한다. 일정 시간 동안 행성의 움직임을 촬영한 이미지처럼 하나의 궤도를 그리는 원이다. 열매들 각각은 저마다 배정된 시구와 나란하게 앉아있다. 사각의 흰 종이에 적힌 것은 윤동주 시인의 이름과 <별헤는 밤>의 구절들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은 시의 흐름을 따라 모과 열매의 궤도를 돌며 글을 읽는다. 마치 모과별의 궤도를 따라 도는 또 하나의 행성처럼, 그리운 이름들을 부르며 사랑하는 표상들 사이를 서성이는 시인처럼. 이 작품의 제목은 윤동주 시인의 시와 동일한 Counting the stars at night, 별헤는 밤이다.
작품 Counting the stars at night 을 구성하는 오브제인 모과 열매는 하나의 질서 아래에 형성된 통일된 세계처럼 보인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질서가 반복적으로 고통을 야기하는 메커니즘이라면 어떨까. 힘의 평형을 이루는 작용과 반작용의 연쇄 속에서 고통 역시 종료되지 않은 채 순환할 운명을 지니게 될 것이다. 질서는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할 수 없다. 사랑도그렇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관계 안에 실재하는 정동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기도 하고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땅에 속한 작품들이 속세 혹은 세속적인 질서에 대한 유비라면 바닥에 놓인 모과 열매는 에덴에서 추방 당한 인간들과 같다. 선악을 아는 열매라고 이름 붙여진 금단의 과실을 욕망한 대가로 각각 자기 몫의 고통을 경험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들은 바로 그 원형(元型)의 인간들. 형벌과 같았던 예언은 수수께끼처럼 주어졌을 것이나 에덴 이후의 세계에서 생존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고통의 의미를 마주하곤 했을 것이다. 에덴 이후의 세계에도 여섯 날 동안 창조된 세상의 질서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새로운 질서 안에서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인간의 욕망이라는 항이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 내면의 이러한 힘은 세계의 질서를 흐트러뜨리거나 다시 배치하게 할 만큼 강한 것으로 드러난다.
공간 2. 하늘 가운데(天)
자우녕 작가는 모과나무 외에도 올리브나무를 오브제로 사용하는데(Cast-off), 이러한 나무들이 종국에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을 나무에 기생하던 식물의 존재에서 찾았다. “It is a plant native to quince and olive trees and symbolizes pain.” 때로 고통의 원인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기생식물 역시 마치 위장술을 펼치듯 자신이 기생하는 올리브나무 열매의 보랏빛 혹은 모과나무 열매의 푸른빛을 띈다. 여러 조각이 서로 엉겨 붙어 있거나 구부러진 줄기를 중심으로 한데 엮여 겹겹이 포개어진 잎의 형상은 흡사 꽃 모양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식물의 가느다란 몸통은 구부러지다 못해 뒤틀려 있기도 한데, 이리저리 휘고 엉켜있는 줄기의 모습은 마치 자신이 기생하는 나무에게 뿐 아니라 식물 자신에게 마저 고통을 안겨주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이렇듯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하게 한 기생식물을 오브제로 형상화하고 이 작품에 Monumental Memorial 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It is a commemoration of the time of life that endured the time of anguish.” 이러한 기념 행위는 고통을 망각하고자 하는 대신 침범적으로 개입한 사건과 사건이 야기한 고통을 인고를 감당한 생의 시간으로서 긍정하고 기억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기억의 의식화는 고통이라는 현상적 지점에 멈추지 않고 해석 작업을 지속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산물이다. 윤동주 시인의 고통이 아름다운 시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사건과 사물을 보는 해석의 힘은 세계의 의미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외부적 사건으로서 땅의 질서 혹은 관성을 깨뜨리는 세 번째 항이었던 기생식물은 공중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기념비가 된 고통의 기억은 한층 더 풍성한 층위들을 보여준다. 화려한 드레스의 스커트 자락처럼, 자랑처럼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은 때로 억겁의 시간을 요구하지만 스스로 새로운 세 번째 항이 되어서 관성을 깨는 일은 오롯한 인간의 몫이다. 기억의 의지는 고통을 딛고 설 수 있다.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공간 3. 하늘과 땅 사이(人)
에덴 동산은 정말로 완벽한 낙원이었을까? 아니면 형벌과 같은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가정할 필요가 있었던 신화적 세계였을까? 좋은 세계의 원형(元型)으로 제시되는 에덴이라는 공간은 사실상 타자의 질서를 따라 운영되는, 다르게 말하자면 인간으로서는 일정한 소외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었다. 물론 선악과를 먹지 않는 한, 소외는 설계되어 있을 뿐 발견되거나 경험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기왕 추방된 자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마당에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무리 낙원적 질서의 세계라고 한들 타자의 세계는 그들을 위한 것이지 나에게 좋은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허나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하여 무언가를 욕망하는 한,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고통을 경험하는 것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다. 그렇다면 어떤 것도 욕망하지 않는 삶은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종교적 수도의 어떤 전통 안에서는 가능할 지도 모른다. Cast-off 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자우녕 작가가 불에 타 숯덩이가 된 올리브나무에서 수도승들의 사리를 떠올려 기획한 것이다. “A sari is a bead-shaped bone that results from (Buddhist) practice. I saw burnt olive trees and a Buddhist funeral came to mind.” 탁자위에 놓인 이 올리브나무 숯 조각들의 배열은 Counting the stars at night 의 원형(圓形)과 대조를 이룬다. 원이 완벽한 균형, 질서, 관성, 혹은 완벽하게 닫힌 세계를 시사할 수 있다면 Cast-off 속 숯의 배열은 일정한 파열 혹은 재배열의 여지가 있는 질서를 상기시킨다. 원이 그 형태를 통해 순환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탄생과 죽음, 이어지는 재탄생이라는 Action-Reaction 의 고리를 형성하는 반면, 방사상으로 흩어진 조각들은 원형의 굴레를 해체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고통을 주는 사건에 대하여 세 번째 항으로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이 그것을 끌어안는 행위라면 불교적 수행을 덧대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어쩌면 끌어안았던 고통을 온전히 내려놓는 것이다. 끝없이 다시 태어나야 하는 윤회의 고리에 얽혀있는 생의 무한한 연쇄를 완전히 종결하는 것, 그럼으로써 그 파생물인 고통도 온전히 종결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종결, 궁극적인 죽음은 욕망을 해체하고 자기를 해체하여 비존재로 나아가기를 열망함으로써 이를 수 있게 된다.
맺음말
전시 Action-Reaction 은 인간이 놓인 생과 생의 다음 혹은 그 너머에 관한 아이러니한 유비들로 가득하다. 모과 열매의 원, 올리브나무 숯 조각의 행렬, 기생식물을 형상화 한 초록빛과 보라빛의 설치물, 그리고 그러한 식물들의 기념비. 또한 영원히 반복되는 윤회를 표현한 선형의 Samsara 에 이르기까지 전시를 구성하고 있는 작품들의 시각적인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이 전시는 삶의 정수처럼 존재하는 고통을 다루고 있다. 아니, 이 그보다도 이 전시는 저 멀리 보이는 나선형의 Samsara_the Eternal Cycle 과 Castꠓoff 사이에 놓인 한 관람객의 응시처럼 공백을 뚫고 나오는 질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 생의 고통을 어떻게 하려 하느냐고. 어떤 제 3 항이 되겠느냐고.
*큰 따옴표 속의 인용문들은 모두 작가 노트에서 발췌한 글이다
전시비평 ‘Action-Reaction’
2019.11.13
Messejana, Portugal 신윤주_ 작가,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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